[50+전문사회공헌단] ‘외국어사업단’ 활동가 전영욱님 인터뷰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외국 파견 나간 부모님 따라 이 나라 저 나라에 살아본 덕에, 외국어 서너 개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이. 남의 나라 적응이 쉬웠겠느냐, 태어난 나라에 사는 게 복이다, 이런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질 않는다. 제 나라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 채, 영어 공부하느라 청춘을 다 보내고도 팝송 가사 하나 들리지 않는 내겐 조롱처럼 들리니까. 자막 없이 외국 영화를 볼 수 있었다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외국어 콤플렉스가 심하다. 그런데 여기 같은 50+ 세대임에도 외국어가 능숙해, 고궁 안내판 등의 틀린 외국어 표기 개선을 제안하며 사회 공헌을 하는 이들이 있다니! 만나기 전부터 주눅 들었다.
다행히‘외국어사업단’ 단장 전영욱님은 무척 겸손하셨다. “팝송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니 얼마나 좋으세요.”했더니 그 정도는 아니라 신다. 외국인 회사에 30여 년 다니다 보니 영어를 좀 하게 된 것일 뿐, 외국어는 어릴 때부터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하신다.
Q. ‘외국어사업단’을 소개해주세요.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 안에는 50+전문사회공헌단 팀이 5개 있는데요. ‘외국어사업단’은 외국어 안내 표지판 오류를 모니터링하고, 개선하는 일에 공헌하는 팀입니다.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에 소속된 커뮤니티‘액티브 외국어 봉사단’을 주축으로 해서 영어, 일어, 중국어에 재능 갖고 계신 몇 분을 더 선발하여, 총 24명 4개 팀이 꾸려졌습니다. 궁궐조는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을 포함한 5개 궁궐을, 전통·문화조는 북촌 한옥 마을, 전통 시장, 인사동, 성균관, 세종대로 한글 가온 길 등을, 건축예술조는 양천로 겸재 정선, 정동, 서촌, 성북동, 대학로 건축물 탐방을, 저는 순례길조에 소속되어 북촌, 서소문, 한강 순례길에 설치된 안내판과 표지판 등을 모니터링하였습니다. 단순히 틀린 글자가 있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입장에서 전체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 글이 잘 쓰였나를 모니터 했습니다.
3개월 일정 계획 중 코로나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은 있었으나, 모두 열심히 참여해 19개 코스에 대한 개선점을 찾아 언어별로 정리해 최종 결과 보고서를 냈기에, 우리 활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Q. 모태인‘액티브 외국어 봉사단’은 어떤 분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외국에서 수년 거주하였거나, 현업에 있으면서 해외 업무에 종사하신 분, 외국어에 재능을 갖고 계신 분들이지요. 이모작 센터 시절부터 시작된‘액티브 외국어 봉사단’은 50+ 세대를 대상으로 캠퍼스, 센터 등에서 운영하는 문화 교실에 참여해 해외 자유여행 경험 공유와 정보 제공을 통해, 수강생이 직접 해외 자유여행을 다녀오도록 도왔고, 2017년부터는 ‘신나는 지구촌 여행’을 주제로 중학교 1학년 자유 학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의 성장 지원 사업에 참여해 종로구 내‘작은도서관’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책으로 만나는 지구촌 여행’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외국어사업단’발족에도 기여하셨겠네요.
네. ‘액티브 외국어 봉사단’은 종로 관내 관광객을 위한 도로 표지판, 지하철 표지판 등을 외국인 입장에서 살피는 프로젝트를 성장 지원 사업으로 진행했고, 송파구 국제관광과와 연결되어 영문 웹 사이트 검토 후 개선 안을 정리해, 개선 필요성을 알리는 봉사 활동도 했으니까요. 이런 일들이 쌓여 ‘외국어사업단’ 발족에 이르렀다고 자부합니다.
Q. 전문성을 갖고 마음가짐도 남다르실 것 같아요.
50+ 세대 모두 재능을 잘 살리고들 있지만, 저희는 특히 잘못된 외국어 안내판은 늘어나는 외국 관광객을 위해서라도 개선해야 하며, 크게는‘국격 문제’다, 라는 사명 의식으로 임합니다. 국격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는 보람이 크지요.
Q. 안내판, 도로 표지판 오류는 어제오늘 지적된 문제가 아닌데요.
저희도 그게 안타깝습니다. 이번에 조사한 안내판 수가 574개인데, 확인된 오류 및 개선 제안 안내판 수가 223개(영어: 115개/일어 :19개/중국어:49개) 입니다. 여전히 많은 수 이지요.
저희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건 오로지 잘못된 것이 수정될 때인데요. 모니터 보고서를 보내도 답신이 안 온다거나 수정이 안 될 때 서운하지요. “아, 이런 문제가 있구나.”라고 인식만 해주어도 좋겠습니다. 보수(報酬)를 떠나서, 인적 물적 자원 한계로 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전문 재능을 가진 50+ 세대가 보완해 주는 측면이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Q. 외국어 안내판의 오류 중 특히 지적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요?
전체 맥락 배경을 모르면 외국인이 잘 모를 수밖에 없는데요. 한글 안내판을 직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역을 해야겠지요. 그래서 2012년에 외래어 표기 용례집이 만들어진 건데, 아직도 안 지켜지는 사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북촌(北村)이라면 우리는 북쪽 촌락 의미를 알고 있지만, 외국인에게 그저 북촌이라고만 하면 북쪽 마을이란 뜻이 내포된 걸 모르지 않겠습니까? 한강은 river를, 한남대교는 bridge를 함께 명기하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궁은 비교적 잘 되어 있었습니다.
Q.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어려움이라면요?
즐거운 에피소드가 많았습니다. 답사 코스가 본인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며 좋아한 단원이 많았는데요. 동물원이었던 창경원이 아닌 오늘의 창경궁을 보며 “이렇게 멋진 궁궐이었구나!”하신 분, 한강 순례길에선 절두산 성당, 외국인 묘지 등에 초등학교 시절 스케치하러 다녔었다며 꼼꼼히 살피신 분, 서소문 순례길에선 자신이 다닌 학교 길을 이제야 다시 와본다며 감격해 하는 분 등, 행복한 추억 떠올리기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는 고모님이 북촌 계동에 사셨기에 북촌을 돌아본 게 좋았는데요. 외국인 못지않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울에 이런 곳이 있구나!”하면서 우리 정취를 많이 느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사는 데 바빠서 제대로 보지 못한 곳, 우리 자신도 몰랐던 곳을 새삼 둘러보게 해주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반면에 코로나로 인해 폐쇄된 공공시설은 주변 도로 표지판만 사진 촬영한 후 검토하였는데, 방문 다음 주에 시설이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방문하여 내부 안내판 사진 촬영과 검수 작업을 하는 등, 재방문과 시간 투자가 많았지요.
Q. 향후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기회가 되면 외국어 표기 개선 사업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현재 하고 있는 사회 공헌 활동, 즉 작은도서관 코디네이터, 중학교 자유 학기 수업 참여도 지속적으로 하면서 사회 공헌할 수 있는 방안을 센터와 함께 찾아 나가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희 보고서가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피드백을 받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외국어 표기는 우리가 100% 맞게 할 순 없을지 몰라도 개선 의지는 보여야겠지요. 우리가 모니터 한 19개 이외 지역도 구역을 정해서 모두 해보고 싶습니다. 관에서 이런 활동에 관심을 가져 일거리로 연결되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