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 너머의 역할, ‘성장 조력자로서

-논술강사·서울런 시니어멘토 경은정씨의 이야기-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KakaoTalk_20251031_021837249.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186pixel, 세로 1780pixel  프로그램 이름 : Google

사진 출처=세바시 제공


 

누군가의 성장을 향해서 움직이는 하루

경은정 씨는 학점인증제 기관인 TV조선캠퍼스 평생교육원 운영강사이자서울런 시니어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다양한 연령의 성인 학습자들을또 다른 한쪽에서는 취약계층 아동·청소년들을 돕고 있습니다대상은 다르지만스스로 공부하려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성장 조력자라는 역할만큼은 같지요.“

 

대상은 다르지만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역할은 하나다스스로 배우려는 이들의 곁에서 서서 함께 걸어가고그리고 그 여정이 멈추지 않도록 조용히 등을 밀어주는 일이다.

 


■ 과몰입의 시간, ‘논술에 인생을 걸다

 

논술의 신이라고요그땐 그냥너무 좋아서 미친 듯이 했을 뿐이에요.”

 

경은정씨의 강사 인생은 대학 시간강사 시절한 선배의 제안으로 시작됐다그는 무언가에 한 번 빠지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이 몰입하는 성향을 가졌다.

 

교재는 늘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다시 고쳤고수업은 그룹별개인별로 다 다르게 준비했어요정말 하루 종일 논술 생각뿐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이 시기의 치열한 몰입과 반복의 시간은 그의 성장 밑거름이 되었고사고력 교육의 전문성을 단단히 다지는 시간이었다.

 


■ 무너진 일상한꺼번에 찾아온 상실

지만 인생은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방향을 틀었다.

40대 후반아버지의 암 투병과 사별큰아이의 자퇴 선언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사업 축소까지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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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더라고요남의 아이들은 그렇게 잘 가르치면서정작 내 아이 하나는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어요.”

 

이 절망감은 스스로를 더 이상 누군가 가르칠 자격조차 없는 사람으로 몰아세웠다끝없는 자책과 불안 속에서 삶 전체가 통째로 무너지는 시간이었다.

 


■ 생존처럼 붙잡은 독서삶을 향한 구조 신호

당시 집안의 공기는 무겁고어두웠다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었다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마지막으로 손에 쥔 것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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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고 읽었어요정말로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까지그는 이 책들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읽으며스스로에게 간절히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러다 오마에 겐이치의 난문쾌답에서 한 문장이 그에게 호통을 치듯 가슴을 후벼 팠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시간을 달리 쓰는 것사는 곳을 바꾸는 것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새로운 결심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그 문장이 정말 호통처럼 느껴졌어요더 이상 마음만 다잡아서는 안 되겠구나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나는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첫 번째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사는 곳을 바꾸는 것곧 서울행을 결심했다가장 현실적이고빠른 탈출구였다도망이 아니라살아남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때는 몰랐어요그 선택이 제 인생의 두 번째 챕터를 열게 될 줄은요.”

 


■ 우연히 시작된 인연, ‘서울런이라는 이름의 멘토링

서울로 이사 온 뒤그는 우연히 둘째 아이의 학교에서 받아 든 가정통신문을 통해 서울시교육청 산하 센터의 한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그렇게 그는 학부모 리더 과정에 참여하게 됐다.

 

이사 온 첫해였어요그때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그분들과 활동 모임을 하던 중에 ‘50플러스 센터의 서울런 시니어멘토’ 모집 공고를 접하게 됐어요.”

 

공고는 대학생 중심이던 서울런에서 처음으로 중장년의 전문성을 살린 시니어 멘토를 선발한다는 내용이었다그는 그 공고를 보는 순간심장이 뛰었다삶에 짓눌려 잠시 잊고 있었던 열정과 설렘이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요동쳤다.

 

이건 제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망설임 없이 바로 지원했죠.”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KakaoTalk_20251215_01381492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000pixel, 세로 4000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5년 09월 08일 오후 9:35  카메라 제조 업체 : samsung  카메라 모델 : Galaxy S25+  프로그램 이름 : S936NKSS5AYG6  F-스톱 : 1.8  노출 시간 : 190/10000초  ISO 감도 : 80  노출 모드 : 자동  35mm 초점 거

50플러스센터를 알게 해 준 학부모리더과정 8(23모임 선생님들

 


■ 마음을 여는 첫 열쇠, ‘공부가 아닌 관심

50플러스센터의 직무훈련 과정을 마쳤을 무렵그의 마음은 오랜만에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자제해야 할 정도로 또다시 과몰입 상태였어요멘토링을 향한 기대와 열정이 컸었죠.”

 

지만 첫 번째로 만난 여중생 멘티는 쉽지 않았다한동안 아이가 마음을 열지 않자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러던 어느 날멘티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와 접점을 만들기 위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의 노래도 찾아 듣고멤버도 외워갔어요제가 먼저 투바투의 신곡을 언급하자 아이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밝아지면서 입을 열더라구요.”

 

그날 이후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긴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어요아이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공부가 아니라 관심이라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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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억에 남는 멘티가 있다두 번째 멘티 역시 여중생이었고아직 어려서 혼자 공부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다그럴 때그의 '학교 밖 청소년 부모'로서의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같은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으로서 아이의 불안과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와 같은 환경의 멘티와 부모님들께제가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공감을 얻고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성과를 재촉하지도 않았다대신 기다리고묻고들었다아이의 말보다 더 많은 시간을 침묵으로 함께 견뎠다그러던 어느 날멘티는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건넸다.

 

고등학교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그 순간 그는 확신했다.

 

진짜 멘토링은 점수를 올려주는 게 아니라신뢰를 쌓고다시 꿈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이구나 하고요.”

 


■ 마이너스를 건너플러스로 서다

멘토로 활동하며 그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한때는 견디기 힘든 상처로만 남아 있던 시간들이이제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붙잡아 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멘토로 활동하면서 제 삶은 마이너스 경험을 플러스 역량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았다는 점에서 가장 크게 달라졌어요그래서인지 예전보다 훨씬 솔직해졌고마음에도 여유가 생겼어요제 삶의 모든 구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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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서울런 4주년 행사 – 멘토와 멘티 친화활동

 

좋은 변화는 곧좋은 성과로 이어졌다그가 속한 팀이 서울런 우수 멘토링팀으로 선정되었다

 

이 상은 저 뿐만 아니라 멘티들도 함께 협력해서 얻은 결실입니다.”

 

그는 큰아이를 통해 배운 교훈을 지금도 멘토링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과하면 아이를 넘어뜨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가르치기보다 먼저 듣고바꾸기보다 기다리는 쪽을 선택한다.



■ 무대 위에서 돌아본혼자가 아니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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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세바시 제공

 

그는 최근 세바시 강연 무대에 서는 기회를 얻었다.

주변에서 너무 기뻐해 주셔서 얼떨떨했어요그 힘든 구간을 다 혼자 버텼다고 생각했는데응원해 주러 온 가족친구지인분들을 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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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선배 및 친구들중앙)가족 및 친지들)지인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너무 힘든 나머지곁에 있던 응원과 격려를 미처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다는 것을그리고 그 순간멘토로서 또 하나의 다짐했다.

 

멘티 아이들이 알든 모르든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이 응원과 격려를 보내려구요언젠가 아이들이 뒤돌아봤을 때가장 힘들던 순간에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테니깐요.”


 

■ 2025년 서울런4050 ‘내인생체인지업’ 장려상 수상

최근 또 좋은 소식이 있었다서울런4050 ‘내인생체인지업’ 공모에서 장려상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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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들과 기념 사진

 

“50플러스 직무훈련을 통해 서울런 시니어 멘토로 첫 발을 내딛고그 안에서 쌓아온 경험과 성장그리고 용기 내어 도전한 공모까지모든 과정이 한 줄의 흐름처럼 이어져 좋은 결실을 맺은 것 같아요

 

경은정씨의 삶은 진행형이다머무는 것이 아니라자신이 가진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며매일 배우고 성장하는 길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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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 지금의 나그리고 앞으로 향할 자리

서울로 온 이후그는 일부러 새로운 장소로 향하고새로운 사람을 만나며새로운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50플러스재단 4050 직무훈련을 통해 얻은 새로운 정체성을 바탕으로학교 밖 청소년처럼 보다 세심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1:1 맞춤 멘토링정서 지지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운영하는 개인 프로젝트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그는 학점인증제 운영강사와 육아종합지원센터 부모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나아가 멘토링과 성인 강의를 병행할수록 교육상담의 필요성을 느껴최근 교육상담을 전공하는 교육대학원 진학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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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부모교육’ 소그룹 활동

 

그의 논술 강사 경력은 지금의 멘토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논술은 사고력 교육의 집약체이고서울런 멘토링의 핵심 역시 자기주도학습력이기 때문이다.

 

멘티가 플랫폼의 다양한 학습 자원을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비선형적 사고 훈련이에요이걸 지도하는 데 논술 강사로서의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돼요.”

 

그는 시니어 멘토로서의 경험과 권한을 살려독서·논술 과정을 멘토링에 접목해 멘티들의 학습을 한층 더 깊게 확장하고 있다.

 


■ 경은정씨에게 멘토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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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멘토링은 단순한 봉사나 일이 아니다그것은 지나온 삶 전체를 다시 의미 있게 묶어 주는 이름이다.

 

저에게 멘토링이란과거의 고통을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감 역량으로 바꾸는 일이에요그리고 새로운 정체성과 지속 가능한 보람을 만들어 주는가장 강력한 자기 치유이자 성장 동력이죠또한 멘티들이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6세부터 18세까지의 취약계층 아동·청소년들이기에 더더욱 의미와 가치를 느끼며지속 가능한 삶의 이유를 찾게 해 준 터닝포인트입니다."

 

이사나이경력의 단절 앞에서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았던 시기멘토링은 그에게 또 다시 시작하고도전을 이어가게 해 준 값진 기회였다.



■ 흔들리는 시간 앞에서, ‘견디는 힘을 말하다

그는 인생의 전환기에서 흔들리는 또래들에게 가장 먼저 견디는 힘을 이야기한다다시 일어서기 위한 기술보다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텨내는 마음의 근력이 먼저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다만 그 힘이 작동하려면 잘 견딜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 필요하죠.”

 

그는 50플러스 센터와 같은 공간이 바로 그 근력을 키워 주는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말한다다시 도전할 용기와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는 전문적인 디딤돌그래서 그는 거듭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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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학부모리더모임의 도서관 탐방’ 모임

  

절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마세요응원하고격려하고끝까지 견뎌보세요지금의 내가 못나게 느껴질지라도그 누구보다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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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리더과정에서 발표강의



■ 글로 나를 붙잡는 시간

논술의 신이라 불렸던 그는 의외로 스스로를 '산만하고 덜렁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그래서 그는 생각과 감정아이디어가 사라지기 전 반드시 로 붙잡는다.

 

아침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 꼭 글을 써요일기아이디어 노트필사투두 리스트까지… 그날의 마음에 맞는 노트를 펼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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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은정씨의 노트들

 

그에게 글쓰기는 기록을 넘어 스스로와의 대화의 방식이다흩어지는 생각을 붙잡아 자신을 객관화하는 통로이자마음을 정돈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중요한 대화를 앞두고는말하기 전에 먼저 머릿속으로 글을 써 본다고도 했다.

 

쏜 화살 같은 말을 그대로 던지지 않고글처럼 한 번 더 다듬어서 말하려고 해요그러면 대화도관계도 굉장히 의미있게 남더라고요.”


 

■ 좋은 할머니라는 이름의 꿈

경은정 씨의 오래된 꿈은 의외로 소박하고도 깊다이름하여 좋은 할머니가 되는 것나이 듦을 쇠퇴가 아니라축적된 지혜와 공감 능력의 상징으로 증명해 보이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삶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기쁘게도 작년에 드디어 50플러스 센터를 통해 이 소망을 실현할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서울런 멘토로 활동하며 그가 배운 가장 큰 태도는 기다림과 경청이다그는 이 두 가지를 앞으로 가족에게도다음 세대에게도그리고 지역사회에 고스란히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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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바꾸려는 어른이 아니라아이들이 다시 자기 인생을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어른그런 좋은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어요.”

 

논술 강사로서의 뜨거운 과몰입의 시간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 같았던 상실과 좌절의 시간그리고 책과 함께 버텨낸 침묵의 시간... 이 모든 시간을 지나그는 이제 가르치는 사람에서 공감하는 멘토로 다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