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 뜨고, 초록 제비 묻혀 오는

하늬바람 우에 혼령 있는 하눌이여.

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8월 서정주 시인의 ‘봄’과 함께 김춘수(봄), 이상(꽃나무), 김소월(봄비), 허영자(봄)의 봄노래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무대가 펼쳐졌다. 원로연극인을 위한 연극제, ‘늘 푸른 연극제’(2017.7.28-8.27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첫 번째로 무대에 올린 연극 [봄날]이다.

 

이강백 작가의 [봄날]은 이성열 연출로 1984년 초연을 시작으로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오현경(81)과 극단 백수광부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서사시다. 오현경은 실제 얼마 전에 아내를 떠나보냈다. 아내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극의 중심에 서서 무대를 지켰다.

 

 

 

 

낡은 초가집에 천식을 앓는 막내와 엄마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큰 장남을 제외한 다섯 아들은 늘 배고파한다.

일만하고 제대로 먹질 못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아버지를 향한 자식들의 불만은 극 전반에 걸쳐 “그래도 자식들이 어떻게 아버지 흉을 봐.”라는 외침으로 표현된다.

 


`우리 아버지는 지독해서 다 가지고 가실 분이야.

아버지 나이만큼 묻어놓은 항아리 돈. 참기름도 아버지 것.

황천길이 마음 나쁜 사람한테는 빙판길이지.

떼굴떼굴 떼 떼굴 황천길에 항아리 굴러가는 소리.

그래도 자식들이 어떻게 아버지 흉을 봐.`

 

 

모든 것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는 가부장제도의 전형으로서 자신의 입지가 확고하다. 회춘에 대한 욕망에 싸여 인근 절에서 맡긴 어린 여자아이를 탐하고 그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막내에게 피를 토하는 고통을 준다. 그래도 더 젊어지고 싶어 장남을 앞장세워 회춘방법을 안다는 무당을 찾지만 소득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장남은 동생들에게 땅을 나눠주겠다는 약속을 아버지한테서 받아낸다.(도무지 거역할 줄 모르는 장남의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동생을 챙기는 살뜰함이 긴 여운을 준다.)

  

하지만 그날 저녁,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다섯 아들들은 드디어 방안에 있는 돈 항아리를 훔쳐 달아난다. 가출한 자식들은 각자의 생활에 바빠서 아버지를 찾아보지 못한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면서 힘없는 노인으로 변해간다.

 

 

 

연극이 끝난 후 누군가 “왜 집을 나와서 개고생이야!”라고 말한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와 함께 출구를 빠져나오는 딸의 한마디다. 요즘 세대답다. 아직 경제적 독립을 못한 25세 이상의 자녀 캥거루족은 은퇴를 준비하는 50+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신 캥거루족처럼 경제활동을 하고 결혼해서도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도 있다. 출산을 앞둔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연극 속의 아버지는 지금의 아버지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봄이 되면 아버지만 좋아. 봄이 몇 번이나 바뀌어야 이 땅이 우리 것 될까”라며 순종하는 아들들에게

봄은 잘 먹고 자신들의 땅을 갖고 아버지 품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으리라.

아버지는 회춘이라는 희망의 봄을 쫒고... 봄날은 가고 또 온다.

누구에게나 봄날은 있다.

엄동설한이 지나 해빙기의 봄을 맞듯

은퇴 후 제 2의 삶을 꿈꾸는 50+세대의 따듯한 봄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우리의 봄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