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행복’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2014년 오연호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책이 출판되었을 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민의 97%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부탄을 부러워한다.

 

 

문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주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했고, 당선 이후에는 ‘한국형 국민총행복지수’에 대해 알아보라는 지시를 하여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1인당 국민소득이 2,800달러 정도인 부탄 사람들이 왜 행복할까?”
“국내총생산(GDP)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가 훨씬 풍족한 나라인데 . . . ”
“왜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국가는 성공했는데, 국민은 왜 불행할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부탄으로 5박 8일 여행(2017. 7. 9. ~ 7. 16)을 떠났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의 동남쪽에 위치한 면적 39,394 ㎢(한반도의 약 1/5)의 작은 나라이다. 부탄으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탄 국영 항공인 드룩 에어(Druk Air)를 타야 한다. 이 비행기는 태국의 방콕, 싱가포르, 인도의 델리, 네팔의 카트만두 등지에서만 탈 수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직항은 없다.

 

l 부탄 여행 첫째 날, 파로 공항에서 팀푸로~

 

우리 일행 28명은 7월 9일 자정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방콕에서 드룩 에어로 환승한 뒤, 10일 8시 부탄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파로(Paro) 공항(2,280m)에 도착하였다. 부탄은 우리나라보다 3시간이 느리다.

 


파로공항

 

7월은 우기이다. 방금 전까지 비가 왔는지 활주로가 젖어 있다.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보니 활주로가 바로 밑에 보인다.
“이런 경우는 대통령이 해외에서 귀국할 때나 볼 수 있는데!” 다들 이런 색다른 경험에 즐거운 표정이다.

 

부탄은 외국인의 자유 여행을 허가하지 않는다. 패키지여행만 허용되는데, 환경 부담금 개념의 체류비로 비수기에는 하루 200달러, 성수기에는 25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비싼 여행비용과 불편한 항공편 때문에 지난해 입국한 외국인은 약 20만 명이고 우리나라 여행객은 약 1,000명 정도라고 한다. 올해는 한-부탄 수교 30주년을 맞아 비수기인 6~8월 여행비가 할인되어 부탄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많아졌다.

 

 

공항에서 우리는 현지인 가이드와 기사의 안내를 받아 팀푸(Thimpu)로 향하였다. 기내에서 쪼그리고 잠을 잔 탓에 피곤이 잔뜩 밀려온다. 차창으로 시원한 공기가 목을 감싸고 들어온다. 미세먼지에 시달린 목구멍이 오랜만에 호강을 한다.
“아~ 드디어 부탄에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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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푸(Thimpu)

 

 

팀푸(2,320m)는 부탄의 수도이며 고산 도시이다. 인구는 약 12만 명이다.
팀푸에서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공예학교이다. 이곳에서는 베틀을 이용하여 손으로 옷감을 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옷과 옷감도 판매한다. 부탄은 공장이 매우 적다. 전통의상은 대부분 손으로 짠 옷감으로 만든다.

 

그런데 벽에 붙은 사진 속 인물이 익숙하다. 파로 공항에서 보았던 거대한 사진 속의 얼굴과 같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현재 국왕(5대 왕) 부부라고 한다. 좌측에는 부인이 4명인 4대 왕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우리 상식으로는 연예인 사진이 붙어 있어야 하는데... 뭔가 다르다.

 

 

 

산 중턱으로 버스가 올라가니 거대한 ‘붓다 도르덴마’ 좌불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가 51m인데 세계 최고라고 자랑한다. 이곳에서는 팀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부탄에서 가장 큰 도시이지만 우리 눈에는 계곡을 끼고 있는 소도시 같다.

 

 

 부탄에 없는 것을 소개할 때 매번 등장하는 것이 신호등이다. 팀푸에는 일본과 한국의 소형 자동차들이 많다.
‘자동차는 많은데 신호등이 없다?’ 원래 팀푸 시내 사거리에 신호등이 있었는데 전통을 보존하려는 부탄답게 없앴다고 한다. 경찰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고, 차들은 사람이 지나가려 하면 바로 선다. 사람이 차보다 기계보다 확실히 우선이다. 뭔가 대접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팀푸의 볼거리 중 으뜸은 ‘타시초 종(Tashichho Dzong)’이다.

‘Dzong(종 또는 드종으로 발음됨)’은 요새화된 불교 승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적 기능을 하고 평소에는 행정 기능과 사원으로서의 종교적 역할을 한다. 이 건축물은 설계도와 못을 사용하지 않고 1216년 지었다. 1641년 부탄의 국조(國祖)인 ‘샵드룽’ 스님이 부탄의 불교를 통일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으며, 3대 국왕이 1962년 수도를 푸나카(Punakha)에서 팀푸로 이전하면서 복원, 증축되었다. 부탄에서는 이 건물보다 높게 집을 지으면 안 되기 때문에 6층 이상의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타시초 종의 남쪽은 국왕의 집무실이 있는 정부 청사이고, 북쪽은 불교 사원으로 대형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국왕이 퇴근한 오후 5시 이후에 입장이 가능하고 사원만 관람 가능하다.

  

 

 

사원의 입구에는 우리나라의 사천왕에 해당하는 분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호랑이가죽 옷을 입고 뱀을 목에 걸었으며 해골을 머리에 꽂고 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무섭기도 하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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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천천히 가는 이곳에서 여유로움의 미학을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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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부탄 여행 둘째 날, 도출라 고개를 넘어 푸나카로~

 

밤새 비가 내렸다. 어제 저녁, 히터로 방을 데웠더니 포근하게 잘 잤다.

 

 

푸나카로 가기 위해 짐 가방을 싸다보니 어제 우리 방까지 캐리어를 가져다 준 호텔 여직원이 생각났다. 이 무거운 가방을 여자들이 번쩍 들어 계단을 올라갔었지.
“남자들은 뭐 하는 거지?”
“이렇게 힘든 일을 여자들이 하게”

 

괜스레 화가 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여자들만 일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들은 남자 여자 모두 함께 일합니다.”
“버스 기사와 가이드는 남자가 하고, 객실 정리나 짐 운반은 여자들이 하지요.”

 

 

 

부탄의 호텔은 대부분 전통 양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화려하면서도 깔끔하다. 직원들은 모두 전통 의상을 입고 근무를 하며 친절하다.
호텔 조식은 우리들 입맛에 잘 맞는 소박하고 정성이 가득한 음식이다. 종류는 적었지만 해외에서 먹은 호텔 조식 중 가장 입맛에 맞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뜨끈한 우유는 몸을 스르르 녹이고 속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쌀, 감자, 콩, 당근, 바나나 등 채식 위주인데, 닭고기나 달걀 후라이가 곁들여지기도 한다. 상처 투성이인 바나나가 너무 맛있다. 노란 바나나만 먹어보았는데 녹색의 로컬 바나나를 보고 있노라니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부탄이 부러웠다.

 

 

 

호텔 창밖을 내다보니 제법 넓은 축구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올해 6월 한국-부탄 수교 30주년 기념 K-POP 슈퍼콘서트가 열렸고,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관광 홍보 영상도 상영되었다고 한다. 인구 12만 정도의 팀푸에서 1만 2천여 관객이 모였고, 역대 콘서트 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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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출라 고개(Dochu-ra Pass)

 

 

 

오늘은 ‘도출라 고개(Dochu-ra Pass)’를 넘어 푸나카로 간다. 도출라는 고도 3,140m에 위치한 고개인데 날씨가 좋으면 눈 덮인 히말라야의 고봉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 비는 내리고 견공들만이 우리를 반겨준다. 네팔에서 본 히말라야를 떠올리면서 그림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도출라 고개에는 108개의 초르텐(Chorten : 스투파, 불탑)으로 이루어진 ‘드룩 왕갈 초르텐(Druk Wangyal Chortens)’이 안개 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이 초르텐은 인도에서 온 게릴라들을 소탕하다가 숨진 108명의 영혼이 모셔져 있다. 이 전쟁에서 인도가 1만 5천 명의 지원군을 보내준다고 했지만, 4대 국왕이 거절하고 몸소 부탄 군인 5천 명을 이끌고 함께 싸워 이겼다고 한다. 인도 군인들이 들어와 넓은 지역이 전쟁터로 변하고 사람들이 많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이 전쟁의 승리로 현재 살아 있는 4대 왕은 영웅으로 존경 받고 있다.

 

 

고개를 넘어가니 산사태로 막힌 길을 포크레인이 정비하고 있다. 순간 아찔하였는데 천만 다행이다.    
부탄은 여름에 인도 동쪽의 벵골 만에서 불어오는 고온 다습한 몬순(= 계절풍)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온다. 급경사의 산지에 도로를 만드느라 깎아낸 산허리는 비가 많이 오면 바로 산사태로 이어지는데 어느 곳에도 사방 공사를 한 흔적이 없다. 그저 흙과 돌이 길을 막으면 중장비가 와서 치울 때까지 기다린다. 부탄의 시간 개념은 우리와 다르다. 약속 시간 2시간 전후는 같은 시간이다. 2시간을 늦게 와도 지각을 한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산사태로 길이 막히면 2시간 정도는 족히 도로에 갇히게 된다. 문득 지하철 출발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집부터 마구 뛰어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 시간에 쫓기고 살지?’
‘친구가 약속 시간보다 늦게 와도 여유로운 미소로 반겨줘야지’

 

버스는 고목들이 즐비한 숲을 끼고 고불고불 산길을 내려온다. 버스 차창 밖은 천 길 낭떠러지이다. 안개가 길을 덮쳐 우리는 하늘나라로 갔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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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카(Punakha)

 

 

산을 내려오니 바나나, 대나무, 선인장이 보인다. 계단식 논도 보인다. 팀푸와 달리 겨울이 따뜻하여 벼의 2기작도 가능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푸나카(1,250m)는 팀푸(2,320m)보다 고도가 약 1,000m 낮다. 기온은 고도 100m 상승할 때마다 0.5℃씩 낮아지므로 푸나카는 팀푸보다 약 5℃ 높다.

 

원래 부탄의 수도는 푸나카였다. 최근 인도와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인도에서 가깝고 교통도 좋은 팀푸로 수도를 이전하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 수도였고 역사 깊은 문화 유적지가 있는 푸나카는 부탄인의 사랑을 받는 ‘겨울 수도’로 남아 있다.

 

 

 

점심을 먹고 치미 마을의 논두렁을 지나 도착한 곳은 ‘치미라캉(Chimi Lhakhang)’이다. 마을 건물의 외벽에는 크고 작은 남근이 그려져 있고 나무로 만든 남근상이 매달려 있기도 하다. 기념품 가게에는 온통 남근과 관련된 그림과 조각품들이다. 처음에는 눈을 둘 곳이 없었고 좀 민망했다. 그러나 마을의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우리들을 쳐다보면서 웃는다. 이런 희한한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 궁금해 알아보니 고개가 끄덕여 진다. 남근은 미친 성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드룩파 쿤리(Drukpa Kunley)’의 상징으로, 다산(多産)을 기원하고 나쁜 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치미라캉 사원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룬다고 한다.

 

「치미 마을에는 해괴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15세기, 하룻밤 잠자리로 설법을 했다는 드룩파 퀸리 스님이 이 마을에 당도해 마을 사람을 괴롭히던 미친개를 죽였다. 그는 입적하면서 자신의 성기를 잘라 후대에 남기게 했고, 이 성기는 나무로 봉인돼 지금까지 전해진다. 하룻밤이 그의 설법 방식인데, 무려 5,000여 명의 여성과 잠자리를 했다던 그의 정력은 다산의 의미로 이어져 남근을 숭배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치미라캉 사원 안에는 거대한 보리수가 있어 나무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에 좋다.
“부처님도 이런 보리수 아래에서 설법을 하셨겠지?”
잠시나마 부처님의 자비심에 대해 묵상을 해본다.

 

 

저 멀리 불경이 적힌 오방색(적색, 청색, 황색, 녹색, 백색) 깃발인 ‘룽다(Lungda)’가 바람에 휘날린다. 이는 티베트어로 ‘바람의 말’을 의미한다. 불경의 가르침이 바람을 타고 세계 곳곳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나의 소망도 룽다에 담아 바람결에 날려 보낸다.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은 '푸나카 종(1,638)'일 것이다.

 

 

 

푸나카 종은 어머니 강(모추 : Mo Chhu)과 아버지 강(포추 : Pho Chhu)이 합류하는 천연의 요새에 위치하고 있다. 며칠 동안 비가 많이 와서 온통 강물이 뿌였지만 화려하고 웅장한 자태는 숨길 수 없다. 모두들 차에서 내려 이 멋진 풍광을 사진에 담기 바쁘다.
이곳에는 부탄을 건국한 ‘샵드룽’ 스님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는데 개방을 하진 않는다. 한편 푸나카 종에서는 초대 국왕의 즉위식(1905)과 현 5대 국왕의 결혼식(2011)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부탄 국민들이 가장 아끼는 불교 사원이다.

 

 

 사원 안의 마당에는 거대한 보리수가 서 있고 네팔 양식의 하얀 초르텐이 있다. 사원 내벽에는 부처의 일대기가 탱화로 그려져 있는데,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그 멋진 그림을 전할 수 없어 아쉽다.
‘눈과 가슴 속에만 담아가야지.’  

 

  

 

부탄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의상을 입고 다닌다. 아마도 국가의 정책인 것 같다. 남자 옷은 ‘고(Gho)’, 여자 옷은 ’키라(Kira)’라고 부른다. 남자는 긴 소매의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 형태의 짧은 치마를 입고 검정 스타킹에 가죽 구두를 신는다. 남자가 바지를 버리고 치마를 입는다는 것은 말에서 내려와 농경민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여자는 긴 소매의 저고리에 통이 좁은 긴 치마를 입는다. 여름인데 덥고 답답해 보인다. 간혹 남자들은 ‘고’의 상반신 부분을 벗어 아래로 내리기도 한다. 부탄에서는 여자 옷보다 남자 옷이 더 멋지게 보인다. 

 

오락가락 하는 빗속에서 부탄 여행 이틀이 지나가고 있다. 이곳은 우기이지만 비는 대부분 밤에 내리고 낮에는 가는 빗방울만 떨어진다. 간혹 비가 그치면서 우리들의 여행을 즐겁게 해주기도 하는데 피부에 와 닿는 공기가 서늘해서 좋다. 서울은 지금 장맛비가 쏟아진다던데...내일은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