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고릿적, 호랭이 담배 끊고 까막까치 까악까악 울던 그 시절∙∙∙.
한양골 인왕산 자락 커다란 고래기와집에 얼치기 양반 살았겠다.
가진 건 재물이요, 없는 건 없는 것뿐.
하릴없이 빈둥빈둥, 설렁설렁 너도 맞고 쟤도 맞고, 두루뭉실, 엄벙덤벙.
화창한 어느 봄날,
진해 벚꽃 흐드러져 농향(濃香) 출렁일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 ‘말밥굽소리 울리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보름 만에 내달렸다.

 

 

밤꽃이 피면 사내들은 발정을 했다.
암내 풍기는 골짜기로 신록은 고운 신방을 열고
수벌들은 여왕을 위해 화려한 고공 섹스 하나뿐인 그 심벌을 바친다.
그대 밤꽃 피는 유월이 오면 우리도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짝짓기의 계절 여왕을 위해 이 몸을 바칠 거나.
남의 둥지 빌려 바람난 뻐꾸기도 알을 낳고
눈부신 햇살 아래 꾀꼬리 암수 쌍쌍 어울려
옥을 굴리는 사랑의 노래 흥겨운데
지금쯤 내 여인은 기다리다 지쳐 어디에 흐드러졌나.
밤꽃이 피면 그대에게 가리 온몸에 향기 지니고
그대에게 가서 나 6월엔 사내가 되리 밤꽃 지기 전에.

                                  ㅡ 밤꽃이 피면, 문병란 ㅡ

 

 

이 양반 날이면 날마다 인왕산 밤꽃 내음에 흠뻑 취해 분탕질로 날밤 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삼십육계 줄행랑 놓았다.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가는 곳 어디메뇨 말 못하는∙∙∙’. 이 양반 정신 놓고 가마 채근하다 문뜩 멈춰 이리저리 살펴보곤 “이 곳이 어드메뇨?” 바다 내음 배릿하고 바다 물결 자욱하니 눈 앞에 고깃배. ‘금강산도 식후경, 꽃구경도 식후사’라.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각설이타령 한 장단 뽑아내고 가려린(?) 손 내보이며 “이 보시게, 어부 양반 개차반도 ‘괘않타’. 밥 한 술 떠보자구”.
 웬일이니? 갯마을 촌구석, 눈앞에 어여쁜 처자, 나무 그릇 받쳐 들고 치맛자락 흩날리며 사뿐사뿐 걸어온다. 물고기가 한 무드기라, 허겁지겁 먹다 보니 기막힌 그 맛에 ‘꼭 그렇지는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꿈꾸는 듯 아련했어’. “이 것이 무엇인고?” ‘묵’이라 하옵니다. 이 은빛 찬란 맛난 물고기가 ‘묵’이라니, 앞으론 은어(銀魚)라 하여라. 그러고선 어여쁜 처자 거둬 들여 한양골로 돌아왔겠다.
뭇 남정네들 처음엔 다 그러하듯, 이 양반 “마노라, 마노라”하며 예뻐하자 기와집 뭇 사람들 “마노라님, 마노라님” 갯마을 처자 부르더라. 달도 차면 이지러지고 따뜻한 술도 식으면 맹탕이요, 난봉꾼들 새 아낙 찾아 기생집 배회하긴 만고의 진리(?)라. 기와집에 널린 게 아낙이요, 넘치는 게 산해진미. 그렇게 스멀스멀 잊혀질 운명이라. 그러던 어느 날, 구름에 달 아스라이 가리고 술 한 잔에 거나한데 어디서 들려오는 애끓는 단소 소리. 불현듯 생각나는 달밤의 아낙 옷 벗는 바스락 소리. ‘바닷가 모래 위 정다웠던 날들, 파도가 불어와 잠 못 자게 하네’. 그 시절 생각나서 “옳다구나, 여봐라! 갯마을 마노라, 은어 한상 차려 봐라”.
금쟁반에 은빛물고기 가득히, 나풀나풀 살랑살랑 담아 내니 “이 맛이 무어더냐? 정녕 이 맛이 맞다더냐? 에이 도루(다시) 묵이라 불러라”. 입맛 버린 이 양반, 갯마을 처자 힐끔 보곤 “어여쁘긴? 어엿브다. 마노라? 마누라라 불러라”. 왠일인지 이유도 모르고 어엿븐 그 처자 졸지에 마누라라 불렸더라. 그 후론 ‘안해’를 마누라라 낮잡아 불렀다나 뭐라나.

 



 

ㅡ 마노라→마누라
     마노라님→마나님→마님
     마노라; 마노라는 상전이나 왕비, 마마처럼 지체가 높으신 분을 지칭하는 존칭이고
     후에 민가에서 마나님, 마님 등으로 변해 지체 높은 아낙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근데 현대에선?
ㅡ 알쏭달쏭; 웬ㅡ어찌된, 의외의 뜻, 왠ㅡ왜인지, why의 뜻
ㅡ 두루뭉실; 두루뭉술이 맞는 말
ㅡ 도요토미; 도? 토; 외래어 표기에도 두음법칙 적용된다. 앞머리엔 도, 나머지는 토.
ㅡ 내음; 냄새의 사투리
ㅡ 무드기; 상당히 많이
ㅡ 어엿브다; 불쌍하다의 옛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