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제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개발도상국 중 가장 경제적 성장을 빨리 이룬 대표적인 나라이다. 중국보다 먼저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이고 IT 강국이기도 한다. 국가의 위상은 높아졌는데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는 이보다 낮은 이유는 무얼까? 왜 우리는 부탄보다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떠난 부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행복’이라는 두 글자를 다시 떠올린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부탄은 2010년 유럽 신경제재단(NEF)의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이유를 여행하면서 자세히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정치적 이유가 한 몫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부탄은 17세기 초까지 승려와 지방 호족들이 지배하는 분열 상태였다. 샵드룽 스님이 티베트에서 부탄 지역으로 이주하여 세속과 종교가 혼합된 이원적 정부를 수립하고 1655년 부탄 지역을 통합하였다. 이때부터 민족적 정체성과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졌고 불교가 지속적으로 정치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정치적 불안과 내부 갈등을 빚어오다가 1907년 우겐 도르지 왕추크(Ugyen Dorji Wangchuk)가 부탄 전역을 정복하고 세습 왕으로 추대되었다. 이를 영국이 인정하면서 절대왕정인 부탄 왕국이 수립되었다.

 

 

 

 

부탄은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대국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역사적으로도 완전히 식민지가 된 적이 없다. 왕추크 왕조 초기인 1910년 영국과 부탄은 푸나카(Punakha) 평화조약을 재체결하였는데, 영국 정부(British India)는 내정 불간섭을 약속하고 보조금을 연 10만 루피(Rupee)로 증액하는 대신, 대외 관계(외교, 국방)에 있어 영국 정부의 조언을 수용하기로 약속하였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한 인도는 부탄에 대한 기존의 영국 정부가 가지고 있던 권리와 의무를 이어받았다. 두 나라는 1949년 10가지 조항을 포함하는 인도-부탄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였다. 영국-부탄 관계는 인도-부탄 관계로 대체되었고 부탄은 같은 해 8월 8일 인도로부터 독립하였다. 이렇게 부탄은 대외적인 활동에서 영국에 이어 인도의 지배를 계속 받아와 인근의 네팔과 달리 폐쇄적인 나라로 남게 되었다.

 

 

 

 

한편 왕추크 왕조의 절대군주제에 대한 반대가 거세지면서 4대 왕에 이르러 왕의 권한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심해졌다. 이에 4대 왕은 2008년부터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신헌법과 새로운 선거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하였고, 개발과 환경보전의 균형을 중시하는 경제 개발을 추진하였다. 또한 국민총행복지수(GNH, Gross National Happiness)를 제안하였고, 2006년 왕권을 그의 장남에게 넘겨주었다.

 

 

 

 

현왕은 제 5대 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이다. 그는 불평등한 인도-부탄 우호협력조약을 2007년 개정하였다. 즉 대외관계에 있어 인도의 조언을 수용하고 무기를 수입할 때 인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국가의 주권을 강화하였다. 2008년에는 신헌법을 채택한 뒤 총선을 거쳐 선왕이 주도했던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이루었다. 국왕이 국가를 대표하지만 정부 수반은 하원의 다수당 대표인 총리가 맡도록 한 것이다.

 

또한 같은 해 국민총행복위원회를 국왕 직속으로 만들어 4개 축(문화적 자존감, 좋은 정치 체제, 깨끗한 환경을 위한 자연 보호, 노동과 휴식의 조화), 9개 영역, 33개 지표로 이루어진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측정하도록 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모든 국가 정책은 ‘이 정책이 국민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평가를 거쳐 통과된 것만 실시한다.

 

경제 성장이 국정 목표가 아니고 국민의 내면적 행복이 국정 목표이다.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이 있고 이를 실천하는 왕과 관리들이 있다면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사교육비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초등학교 7년과 중등학교 4년을 합하여 11년 동안 무상교육이 실시되고, 외국인이라도 부탄의 병원을 찾으면 의료비가 무료이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제도가 이루어져 있다. 빈부 격차가 우리나라보다는 작아 보인다.

 

게다가 현왕은 평민과 결혼하여 왕궁을 나와 작은 집에서 살고 있으며, 가끔 자전거로 출근하는 등 서민적인 생활을 한다. 선왕과 현왕은 땅이 없는 국민에게 자신의 소유지를 나누어주고 자립하도록 돕는다. 왕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선왕과 현왕의 노력은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존경의 대상이다. 국왕의 법률적 권한은 축소되었지만 국민들의 선왕과 현왕에 대한 신망은 매우 높다

 

부탄이 행복한 이유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왕실에 부패가 적고, 왕과 정부 관리들이 정직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국정이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운영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지나칠 정도로 왕족이 우상화되어 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 호텔, 상점에는 선왕과 현왕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심지어 달력의 모델도 거의 현왕 가족들이다. 과거 군사 정권 당시의 우리나라 상황이 떠오른다. 강제적으로 사진을 걸도록 하지는 않았겠지만 좀 어색하다.
 

 

 

 

한편 부탄 국민이 행복하다고 스스로 말하는 바탕에는 불교와 명상이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이 태어날 때부터 법명을 받고 명상을 생활화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명상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 부탄에서의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생활이다. 부탄은 범죄율이 매우 낮고 범죄가 발생해도 처벌의 강도가 매우 약한데 이는 불교의 가르침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불교의 사상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다. 어찌 보면 사람보다 더 팔자가 좋아 보인다. 한가하게 잠만 자는 녀석들이 너무 많다. 불교의 윤회 사상을 믿고 있으니 저기 보이는 강아지가 그들의 조상이 환생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고기도 잡지 않는다. 동물을 인간의 구경거리로 만드는 커다란 동물원도 없다.

 

산간 지방의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고 있지만 생명을 해치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으며 여유로운 웃음을 잃지 않는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귀하게 여긴다. 가끔 인권이 무시되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사람과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부탄이 부럽고 아름다워 보인다.
 

 

 

 

 

부탄에서 부러운 점이 또 있다면 자연환경이 깨끗하게 잘 보전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토의  70%를 산림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법에 규정되어 있어 나무를 베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산업화가 늦어서인지 공장이 거의 없고, 전기는 수력으로 생산하지만 댐의 규모가 작다. 험준한 산악 지형의 특성 상 농경지 확보가 어려워 식량 생산량이 적고, 교통도 불리하여 상업으로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살 수 없는 자연 조건이고, 덕분에 환경 파괴는 적게 진행되었다.
수도인 팀푸의 도심 지역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나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우기이기는 하지만 흙탕물이 호텔의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와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미세먼지로 시달리고 일회용 쓰레기가 넘쳐나는 우리의 환경과 대조적이다.

 

 

 

 

부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고 남은 재를 그가 살던 지역의 진흙과 밀가루로 함께 반죽하여 채차(Tsa tsa)라는 작은 사리탑을 만든 뒤 바위 밑에 모셔둔다. 채차는 비용이 적게 들므로 서민들이 주로 만드는데, 한 사람의 뼛가루로 여러 개의 채차를 만들 수 있어 일부는 성스러운 곳으로 옮겨 모셔두기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묘역을 크게 조성하지 않고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요즈음 살충제 계란 때문에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문제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부탄의 대부분의 농산물은 유기농으로 재배된다. 좀 더 큰 열매와 채소를 얻기 위해 비료를 많이 사용하지도 않는다. 식재료가 무엇인지 음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반조리 식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조리법이 간단하여 원재료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식사이지만 유해물질이 포함되었는지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건강식인 셈이다.

 

은둔의 나라 부탄!
하지만 1999년에 이르러 TV와 인터넷 사용이 허용되었으며, 최근에는 젊은이의 상당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더 이상 부탄은 폐쇄적인 은둔의 나라가 아니며 글로벌 시대의 지구촌 구성원의 하나이다. 이제는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피할 수도 없고, 과학 기술이 가져다 준 문명의 혜택을 동경할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부탄 국민의 행복이 부럽다.
행복이 물질적 풍요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평화로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자연과 교감하며,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안다면 행복은 우리 곁에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