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돌고 돌면 끝은?

 

패션(fashion∙유행)은 돌고 돈다. 사실 이 말은 유행의 가변성보다는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명제에 의미를 더 할 수 있겠다. 미니스커트에서 맥시스커트, 넥타이 너비의 넓음에서 좁음까지. 왔다갔다 하지만 그 이면엔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반영돼 있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고, 내용은 형식을 담보한다는 변증 논리가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우면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는 속설(or 정설). 여성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 아마도 사실 여부를 떠나 남성들이 긴 치마보단 짧은 치마를 좋아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 짧은 치마를 입고 길거리로 나선다는 반(反)페미니즘(?)적 해석부터, 치마 길이가 곧 돈이라는 -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작다고 싸진 않으니까 - 경제 논리적 해석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패션학적으로는 길어진다는 것이 정설(or 속설)이다.

 

 

 

 

1920년대 경제가 호황일 때 ‘가르손느 룩(Garconne Look)의 일부로서 치마 길이가 짧아졌고, 30년대 불황이 시작되자 다시 길어졌다는 근거를 - 그러나 사실 가르손느 룩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다. 남녀평등과 여성의 참정권 요구 등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행동(?)하기 편하게 길이가 짧아졌다는 - 드는 이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 오일쇼크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긴 치마가 유행이었고, 경제가 좋아지자 치마 길이가 다시 짧아졌다는 근거를 들기도 한다.

 

 

" 가르손느 룩은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경제 활동을 반영한, 보이시룩(Bovish Look)이 가미된 패션 "

 

 

어쨌든 유행의 이유를 굳이 찾아야 한다면야 어디 한두 가지이겠나, 부지기수겠다. 다만 패션이 돌고 도는 이유를 찾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도 싶다. 결국 패션의 끝은, 산업학적으로 거대 기업, 유명 디자이너들이 돈벌이를 위해서 만들고 퍼트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군산복합체가 돈벌이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 듯.

 

 

패션, 따를까 말까?

 

멋과 치장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실용적인 이유에서 시작돼 패션으로 완성된 경우도 많다. 하이힐은 고대 이집트부터 있었다지만 정점은 중세 유럽 도시 특히 파리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이야 키가 커 보이는 게 주 목적이요 엉덩이와 가슴을 돋보이게 하는 게 부수적 목적이라지만 - 실상은 어떤 게 주 목적인지는 신는 사람만이 알 터 - 그 때는 안 그랬다. 하수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고, 아무 데서나 볼 일을 본 관계로 파리 시내는 온통 오물투성이였다. 해서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 하이힐을 신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가발 역시 귀족 권위의 상징으로 보이기 위해 썼다지만 실상은 머리를 잘 감지 않은 관계로 엉망(?)인 머리를 감추기 위해 썼던 게다. 코르셋 역시 허리를 잘록하게 보이고 가슴과 엉덩이를 돌출(?)하기 위해 조여 매었다지만 코르셋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코르는 잘 벗지 못하게, 또는 잘 벗기지 못하게 하기 위한 속뜻(?)이 있다고도 한다. 요즘 방송 프로그램 유행의 한 조류이자 주류인 먹방의 내면엔 제작비 절감이라는 방송사의 경제적 의도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확실한 건 패션은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거다. 그리고 패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시대에 뒤처지고 싶지 않은, 시대상을 좇지 않을 수 없는 풍류 때문이 아닐까 한다 ‘패션 밖에서 바보가 되느니, 패션 안에서 바보가 되는 편이 낫다’는 칸트의 말이 진리 아닌 진리겠다. 그리고 아무리 돌고 돌아도 패션의 끝은 결국은 경제적 논리가 투영된 사람의 심리가 아닐까 한다. 유행을 단지 유행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겠다.

 

 

패션의 완성, 헤어 스타일?

 

많고 많은 패션 아이템 중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빠질 수 없는 하나가 헤어 스타일. 헤어 스타일에 맞추어 옷을 입는지, 옷에 맞추어 머리 모양을 바꾸는지 어떤 게 우선이냐의 문제일 뿐 헤어의 형태는 패션뿐 아니라 사람의 인상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패셔니스트라면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중요 요소다.

 

가르손느 룩에서도 활발함과 보이시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짧은 치마와 함께 짧은 헤어스타일이 유행이었다. 1960년대의 히피(Hippie) 문화는 기존의 관념에 저항하는 반사회적, 반체제적 성격을 띠었다. 또한 패션적으로는 히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청바지와 장발이 유행했다. 청바지야 리바이스가 고도의 전략으로 유행시켰다는 음모설도 있다지만 장발을 빼고 히피, 저항과 부정을 말할 수 없음이다. 예서 보듯 헤어 스타일은 시대상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패션의 완성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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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은 저항과 부정의 상징.
장발을 빼곤 히피 문화를 논할 수 없다.
요즘 히피펌이 유행이라는데 무엇에 저항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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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일까, 소신일까?

 

아무리 시대에 따라 패션이 변한다고 해도 꿋꿋하게 패션에 무감각한 사람도 많다. 사실 굳이 패션을 따라야할 이유는 딱히 없다. 특히나 먹고 살기 바쁜 50+에게 패션을 좇는 건 사치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패션에 역행한다고 해서 젊은 친구들이 굳이 ‘꼰대’라고 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패션에 조금 물들려고 할 때 ‘주책’이라고 욕하는 젊은이가 더 많을 터. 패션은 철저히 자유의 영역이고 개인의 영역이지만 이럴 땐 칸트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만 할까? 젊은 세대와의 ‘제너레이션 갭’을 줄이고자 패션에 동참하는 50+는 ‘주책’이고, 패션을 따르지 않는 50+는 ‘꼰대’, 이럴 땐 중립이 최선인가?

 

지난해 말 뜻하지 않은 일로 중환자실에서 잠시 휴식 아닌 휴식을 한 적이 있다. 딸아이의 과보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쉬고 나왔다고 웃어 넘길 수도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생각과 생활의 변화가 조금은 있었기에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자위(自慰)해 본다.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레지던트들의 호들갑도, 아 죽다가 살아났구나 하는 개인적인 안도도 또 감응도 없었다. 다시 얻은 생명? 제2의 인생을 살아 보자고 굳게 다짐했다? 신파극에서나 나오는 장면이 아닐까.

 

사실 발달한 의료 기술의 부산물이라고 편히 생각한다.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검사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을(물론 죽었을 수도)---. 그러나 결국 의료 기술의 혜택, 그냥 그대로 흘러가는 거다. 다만 그때 생각한 게 몇 개 있고 지금 실천 중에 있다. 좋아하는 술을 앞으로도 계속 즐기기 위해, 건강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끊자, 6개월 정도만. 두 걸음 전진을 위한 한 걸음 후퇴? 이제 한참 지났으니 조금씩 마셔야 될 터인데 또 고래처럼 ‘풀’까봐 조금 걱정도 된다.

 

 

버켓 리스트, 사치 or 희망?

 

또 하나는 버켓 리스트(Bucket List)를 작성하기로 했다. 굉장히 대단한 게 아니다. 세계일주라든지 몇 억짜리 외제차를 산다든지 그런 거 없다. 가장 커 봤자 자메이카 여행 정도. 자메이카의 퍼브(Pub)에서 럼주 한 잔 기울이며 레게(Reggae)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싶다, 아무 생각없이. 떨어지는 태양에 젖은 퍼블의 바다 색감을 보면서든, 자동차 경적 울리는 도심 가로등에 비추이는 은빛 칙칙함을 느끼면서든. 그리곤 사소(些少)하다면 사소하고, 소소(小小)하다면 소소한 버켓이다.

 

그 중 하나가 ‘My Top 10’ 만들기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기억하는 이들, 특히 딸들에게 남겨 주기 위해서. 그런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처음엔 열심히 생각하다 현재 All Stop이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핑계대지만 그런데 사실 어려워서다.

 

좋아하는 노래 Top 10, 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Dire Straits의 ‘Sultans of Swing’, 그리곤 3번은? Barclay James Harvest의 ‘Poor Mans Moody Blues’, Chuck Mangione의 ‘Children of Sanchez”? 5번은? 다음은?

 

 

영국의 Pink Floyd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적 그룹으로
Anoher brick in the Wall이 포함된 앨범
The Wall’은 현대의 획일적인 교육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음식은? 1번 참치회, 2번 소고기 스테이크, 3번 김치만두. 그럼 4번은 칼국수, 김치찌개, 파스타? 술도 음식인가? 그럼 1번은 레드와인.
책 Top 10은? 그리고 또? 어렵다. 그래서 타협하기로 했다. 순위없이 그냥 ‘Top 10’만 결정하기로. 그런데도 아직 진행형이다.

 

와인도 있다. 그 동안 두 아이가 태어난 해의 빈티지(Vintage)로 레드와 화이트를 각각 마련했고, 성년의 날에 같이 마시면서 “술은 어른에게 잘 배워야 하는 거야”하며 무게 잡고 교훈(?)을 좀 주려 했더니 큰 아이는 아직 술을 못 마셔 그냥 넘어 갔다. 둘째는 성년의 날이 아직 안 왔고, 이러다 와인이 식초되게 생겼다. 혼자 마실까하는 생각이 굴뚝이다. 그리고 이제 나 자신을 위해 My Birthday Vintage를 구해서 마시는 것이 리스트에 있지만 만만치 않을 터이다.

 

 

50+라고 못 할 건 뭐야

 

생각하고 진행 중인 버켓 중 소소한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헤어 스타일. 50+라면 누구나 기억이 있을 게다. 70~80년대 암울했던 학창시절, 캠퍼스엔 백골단이 잔디밭을 점령했고 시위라도 예정되어 있으면 교문을 전경들이 둘러싸고 통제해 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을 돌려야 했다. 직접 현실 저항에 화염병을 던지진 않았어도, 은근한 저항의 표현이었든 아니면 시대 패션의 추종이었든 그 시대 젊음의 아이콘 중 하나가 바로 장발이었다. 비록 뒷주머니에 커다란 빗을 꽂고 다니지는 않았었지만 그 때의 긴머리 스타일을 죽기 전에 또 해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버켓에 살짝 담아 보았다. 머리 기르기. 더해 과감한 컬러하고 파마하기 - 원래 곱슬기가 조금 있어서 파마만 하면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가 되어서 어쩔지는 모르겠다.

 

거울 볼 때마다 나 스스로도 지저분하다고 생각할 정도이니 남들이 볼 땐 어떨까? 만나는 지인들이야 좋은 말로 작가(?) 같다지만 웬? 그래도 기르고 있다. 지금이 위기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소소한 버켓도 이루지 못한다면 다른 건 어찌 할 수 있겠나? 50+라고 머리 길게 기르면 안 되나? 몇 달 뒤의 긴머리를 생각하며 머리를 자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남의 시선도 억눌러 본다. 꼭 해낼 터.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소소하다면 소소한 평범한 50+의 버켓 리스트. 하나하나 이루어 나아가다 보면 좀 더 알차고 희망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소한 버켓부터 하나하나 이루어 나아가다 보면 더 큰, 더 알찬 버켓도 이룰 수 있겠지. 설령 이루지 못하다면 또한 어떠하리? 그 과정에 행복이 희망이 있음인데...

 

모든 것을 이룰 수 없고, 가질 수는 없는 인생. 그래도 인생 중반기에 거창하지는 않지만 이루기 위해 하나하나 할 수 있는 버켓 리스트를 갖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행복이고, 희망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