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고릿적, 호랭이 담배 끊고 까막까치 까악까악 울던 그 시절∙∙∙.

송도(松都) 송악골 선죽교 너머 성균관 거리, 벽(碧)씨 성 한량 한 명 살았것다. 금(琴) 타는 솜씨 기러기 울고 가고, 활 쏘는 솜씨 능히 기러기 떨어트리는데. 풍류에 능한 데다 가문까지도 명문. 송도 기녀들 기러기목 빼들고 오늘이 내일이냐, 내일이 오늘이냐 날이면 날마다 벽(碧)가네 기다린다.

 

그날도 뭇 한량들 어우러져 관덕정(觀德亭)에 모여 서서 활쏘기 내기 한창이다. 지족선사 말하기를, “만월대 송이(松伊)를 취한 이 그 누구인가? 가히 천하명기 아니든가?” 헛기침 내리쏘며 슬쩍하니 뻐겨본다. 뒤질세라 도학군자, “태평관 소춘풍(笑春風)은 어떠한고? 어디 만월대 은근짜(隱君子)랑 비교할고?” 넌즈시 소(蘇)가가 시조 한수 읊는다.

 

 

달빛 아래 뜰에는 오동잎 모두 지고
찬 서리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다락은 높아 높아 하늘만큼 닿았는데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소리는 차기가 비파소리
피리에 감겨 드는 그윽한 매화 향기
내일 아침 눈물 지며 이별하고 나면
님 그린 연모의 정 길고 긴 물거품이 되네
- 황진이 -

 

 

‘나중 난 뿔이 우뚝하고’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샌 줄 모른다고 화류업계 막둥이가 ‘젠체’하며 말씨름을 정리한다. ‘용이 없는 바다에는 메기가 꼬리를 친다’고 벽(碧)가네 속으로 ‘헛헛’하며 소(蘇)가를 내리깔고. 겉으론 금옥군자(金玉君子), 속으론 서교정(西交亭) 진이(眞伊) ‘얼우’를 생각에 머릿살이 어지럽다.

 

내친 김에 님 본다고, 활 쏘듯 연통하여 박연폭포 불러낸다. “송도 기녀 ‘어루’기는 술잔 기울이 듯 다반사, 그깟 기녀 못 ‘어룰’까?” 금낭 이불 속, 활 쏠 생각에 과녁이 어른하다. 짐짓 내색 않고 “시 한 수 읊어 봄이 어떠한고?”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할제 쉬어감이 어떠하리
- 황진이 -

 

 

진이(眞伊) 읊고 나자 “내노라하는 기녀 ‘얼운’이가 나이거늘” 길게 한숨 내쉬고서 “졌다”. “’어룬’이여, 어른이여, 제 아무리 많이 ‘어룬’다고 ‘어른’인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나잇살이 아깝지 아니한가? 세 살바기 ‘어린’이가 따로 없다.” 시 한 수 읊으면서 유유히 돌아 선다.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드란 구뷔구뷔 펴리라
- 황진이 -

 

 

후로 많이 많이 ‘어룬’이를 ‘어른’이라 하였고, 나잇값 못하는 어리석은 ‘어린’이를 ‘어린이’라 하였다고 하든가, 아니든가? 믿든가 말든가.

 

 

믿거나 말거나
얼우+이→얼운이→어룬이→어른, 얼다; 남녀가 교합(交合)하다
어린+이→어린이, 어린; 어리석은→나이 적은

 

알쏭달쏭
넌즈시→틀린 말, 넌지시→가만히
내노라하는→틀린 말, 내로라하는→나+이로다
바기 틀린 말, ㅡ배기

 

                                                                   
- 은근짜 : 기녀는 일패(一牌)·이패·삼패로 등급을 나누는데 일패는 관기, 이패는 은근짜라하여 밀매(密賣)녀, 삼패는 매춘부라 했다.
-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 : 청출어람(靑出於藍)
- 용이 없는 바다에는 메기가 꼬리를 친다 :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
- 머릿살이 어지럽다 : 마음이 어수선하다
- 금옥군자(金玉君子) : 몸가짐이 단정하고 점잖으며 지조가 굳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