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대는 부모와 이미 사별하였거나 곧 사별을 겪게 될 세대이다. 본인도 몇 가지 병은 있을 것이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중년학 교실의 3번째 특강인 ‘내가 준비하는 죽음’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중년학 교실은 사회적협동조합인 가족세대통합연구소 ‘서로이음’에서 주관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진행되는데 오늘은 유난히 수강생이 많다. 교실을 꽉 채우고도 자리가 부족하다. 죽음이라는 특별한 주제를 다루다보니 수강생들이 지인을 초대한 것이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수강생은 “중년학 교실이 중년이 겪게 될 다양한 문제를 다루어서 수강하게 되었다”면서 “특히 죽음에 대한 강의는 평소 접하기 힘든 주제”라며 기대감을 표시하였다.
오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실 강사는 고민상담소 ‘블턱’의 대표인 최호선 씨이다. 최 강사는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그러나 십 여 년 전 선박 사고로 가족을 잃었고 시신의 수습 과정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이후 장례와 죽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강의는 ‘여성 수도자의 마지막 가는 길’이라는 기사를 함께 보면서 시작되었다. 이 분은 경기도 벽제에 있는 동광원의 박공순 원장인데, 87세에 노환으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지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하다가 이 세상과 작별 하였다. 최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린 딸과 사별을 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해야 잘 하는 건가요?”
“아버지가 암으로 병상에 누워있는데
자식으로서 무엇을 해드려야 하나요?”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최 강사는 “웰빙(Well-Being)이 세간의 관심을 많이 끌고 있지만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 즉 웰다잉(Well-Dying)도 중요”하다며 생사학(生死學)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생사학은 죽어가는 과정과 죽어가는 사람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합니다. 주요 분야는 호스피스(Hospice), 임종간호(Terminal Care), 유가족 심리상담(Grief care), 죽음준비교육(Death education)인데 철학, 종교학, 사회학, 심리학 등 인문학적이고 순수학문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편 시체 현상을 조기 시체 현상과 만기 시체 현상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조기 시체 현상(早期屍體現象)으로는 체온 강하, 혈액 침하, 시체 경직, 건조 등이 있고, 만기 시체 현상(滿期屍體現象)으로는 자가 융해, 부패가 있다고 한다. 요즘은 병원의 영안실로 시신을 모시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직접 이런 현상을 볼 수 없다. 최 강사는 사고사로 죽음을 당한 시신의 사진을 직접 보여주었는데 평소 접하기 힘든 험악한 모습의 사진이어서 수강생의 상당수는 무척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계속해서 시신 처리 방식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시신 방부 처리 방법과 함께 시신용 화장품과 메이크업 도구들도 소개하였다. 서양에서는 시신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화장(化粧)을 해드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안치시설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현하였다. 영안실이 병원의 지하실 구석에 배치되어 있는데 시신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죽음과 관련하여 가장 궁금한 것은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즉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후와 증상은 무엇일까?

 

“죽음이 다가오면 음료나 음식의 소비가 줄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회피하며, 잠자는 시간이 늘어나고 불안해합니다. 또한 대소변을 실금(失禁)하고, 방향 감각을 상실하며, 호흡 패턴이 바뀌고, 혈색이 변하지요”

 

죽음의 마지막 날이 임박해 오면 가족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물음에 강사는 “임종자로 하여금 사후에 남겨질 일들에 대해 걱정을 덜고 안심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당사자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고 가족들 역시 그를 보낼 수 있게 되면 각자의 방식대로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고 답하였다.

 

이런 죽음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잘 알고 있으면 가족의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고 대처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생애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시간도 가져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인이나 가족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평소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다.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죽음은 아직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와 본인뿐 아니라 가족을 당황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좋은 죽음(good death)에 대한 12가지 조건이 소개되었다. 12가지 조건 중 ‘어디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과 ‘마지막을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한 발언권 보장’이 눈에 띈다.

 

내년 2월에는 웰다잉(Well-Dying) 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 ·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본격 발효된다. 호스피스 · 완화의료는 올해 8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연명의료 결정은 내년 2월 4일부터 시행된다. 연명의료는 폐 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다.
웰다잉 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에 따라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즉 웰다잉 법은 존엄한 죽음에 대해 본인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안락사와는 맥을 달리하는 것이다.

 

자신이 말기질환자가 되었을 경우 연명의료를 택할 것인지 완화의료를 택할 것인지 미리 선택하고, 연명의료를 원치 않을 경우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정부가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 등록해 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해두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의학적 판단을 전문의 2명이 내렸을 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지 않고 중증 환자로 입원했다면 환자가 담당 의사에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이 서류에 대해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고 환자의 확인을 받아 작성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똑같은 법적 효력을 가진다.

 

죽음에 대비하는 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노인뿐 아니라 우리 50+세대도 죽음에 대한 성찰과 죽음 준비 교육이 필요하다. 죽음은 죽은 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실감으로 고통을 겪는 남겨진 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강의가 끝난 뒤 수강생 몇 명이 50+서재에 모여 죽음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작년에 부친을 잃었다는 우종수씨는 “아버지에 대한 잔상이 7년 동안 남아있었다”면서 “앞으로 주변 사람이 죽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장례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김태형 씨는 “강의 중에 보게 된 훼손된 시신 사진에 충격을 받았다”며 “사고사보다는 정상적인 죽음에 대한 종교적, 심리적, 문화적 측면의 예시가 더 많았으면”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박재성 씨는 작년 부친의 죽음과 관련하여 치매 환자와 가족의 어려움에 대해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또한 큰누님이 95세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는 김영환 씨는 “형님이 미국에 살고 있으니, 차남인 자신이 장례절차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놔야겠다”며 “아버지뿐 아니라 자신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둘 것”이라고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