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것? 새 것이 더 좋아

 

옛 중국. 구중궁궐(九重宮闕) 수천 명 궁녀 중 성은(聖恩)을 입지 못한 소녀들은 모시던 황제가 죽으면 비구니가 되었다. 황제가 살아 생전에 성은을 주지 않아(?) 비록 처녀성을 잃지는 않았다고 해도---.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나. 새 황제 또한 새 여자를 안아야 한다는 거다. 물론 새 황제의 여자 취향도 달랐겠다.

 

서양 중세시대. 영주는 봉토 내의 처녀에 대한 초야권을 갖고 있다. 일도 하고 전쟁에도 나가야 하고 결혼마저도 영주와 초야를 보낸 여자와 해야 했다. 불공평의 극치. 섹스에서 뿐만 아니라 늘상 새 것만을 찾는 이들이 있다. ‘구관이 명관’이요 옛 것에서 새 것을 찾는다는 말도 있다지만 이들은 그 가치를 모른다는 양, 아님 애써 외면하는 건지 새 것만을 찾고 탐닉한다.

   

 

 

특히 이런 현상은 요즘 젊은이들의 특권인 양 하나의 ‘코드’로 ‘세태’로 자리잡고 있다. 휴대폰을 몇 달 만에 바꾼다거나(돈 많고), 책도 고전은 나 몰라라 하고 가벼움 가득한 신간만을 찾는(출판사야 대환영) 거야 그렇다 치자. 한 번 사귄(?) 여자는 절대 다시는 안 찾는다(고삐 잡히기 싫어서?)는 원칙 아닌 원칙을 지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몇 년째 구닥다리 휴대폰을 쓰고(골동품이 좋아?), 주점에 가도 늘상 찾는 단골만 찾고(일편단심 민들레?), 술도 마셨던 술만 찾는(고르기 귀찮아서?) 50+(늙은 오빠∙언니)들의 문화와 그 숨은 셈법을 이해 못한다. 어리다 못해 경험 없는 어린 여자만 찾는 현대판 영주 행세하는 아저씨들도 있다지만, 대부분의 50+세대의 문화는 그렇다.

 

그러나 새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물론 처녀지를 개척한 모험가들 ㅡ힐러리 경이나 마젤란이나 스콧트∙아문센 등ㅡ은 인류에게 도전과 희망을 주었다. 파스퇴르나 퀴리 부부 등의 첫 발명은 인류에게 편안함과 이익을 주었다. 새 것을 찾기 위한 노력과 그 결과는 인류에게 희망과 발전을 주었다. 그래도 전통과 옛 것도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갖고 다가 온다. 또 꼭 필요하기도 하다.

 

 

가치, 새로움과 오래됨의 공존

 

햇과일과 햇곡식은 농부에겐 수확의 기쁨과 포만을, 가족에겐 풍요로움과 여유를 준다. 첫 아이의 탄생은 부부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초경은 소녀에서 처녀로의 성숙을 준다. 첫 사랑은 들뜸을, 첫 관계는 설렘을 준다. 그러나 수확 뒤에는 빚도 남고, 새 생명의 태어남은 곧 신혼의 끝을 뜻한다. 초경은 가임(可妊)에 대한 책임을, 첫 사랑은 실연의 아픔과 함께 하기도 한다. 첫 관계 뒤의 아픔과 허무함(?)은---.

 

이렇듯 새 것에도 나름의 내재된 모순은 존재한다. 또 가치라는 것이 항상 새로움에서만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니다. 벤처 산업 뒤에는 굴뚝 산업이 있고, 창조의 미를 갖는 예술 작품은 한편으론 오래된 고전 명작의 가치를 갖는다. 우리네 선조들은 오래된(?) 아낙네만 ‘보쌈치기’ 했다. 새 것은 새 포대에 주려는 작은 배려(?) 아닌 배려.

 

새로움과 오래됨의 가치는 서로 공존할 때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거나 편애, 편중하다가는 탈이 생기게 마련이다. 꼭 온고지신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만을 탐닉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는 보편을 말하고자 함일 뿐. 그렇다고 전통 또는 관습을 합리화하는 것 역시 아니다.

 

 

동질감, 차별의 벽을 허물고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보졸레 누보 데이. 프랑스 보졸레 지역에서 수확한 그 해의 햇포도로 만든 보졸레 누보를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다. 와인이란 것이 실상은 오래된 것일수록 좋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자 정설이다. 물론 빈티지도 따져야만 하고, 숙성이 잘 못되고 잘못 보관한 와인은 식초에 다름 아닌, 영(young)한 와인보다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잘 숙성된 오래된 와인의 풍미와 맛이란 햇와인에 비해 비교할 게 못 된다.

 

 

그 해 수확한 햇포도로 게다가 숙성도 몇 개월 하지 않은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프랑스 보졸레 지방의 중저가 와인이 전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되고 유명세를 타게 된 가장 큰 이유. 그 이면에는 상업적인 마케팅이 있다. ‘뻬뻬로 데이’니 ‘화이트 데이’니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졸레 누보를 거역할 수 없는 명백한 이유 또한 존재한다. 새롭다는 것과,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동시에 마실 수 있다는, 동질성을 갖고 함께 공유한다는 것.

  

 

생각해 보라. 빈부 격차를 떠나, 인종을 떠나, 나라를 떠나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같은 날 동시에 같은 와인을 마신다는 것을. 거기에 가격이 비싸지 않은 것도 한 몫한다. 세계의 500대 와인을 모두 맛 보았다(소시민에겐 평생 죽을 때까지도 불가능한). 와인의 King이라는 사토 라투르(Chateau Latour)를 단체 모임에서 돌린다(평범한 샐러리맨의 두세 달치 봉급, 한 모금에 한 달 용돈을). 뇌물을 줄 때 돈을 안 받는 이들에겐 값 비싼 와인을 선물하라고 친절하게 노하우까지 알려준다(일견 로맨틱한 면도 있나?). 국내 굴지의 그룹 전 회장. 그들은 그들만의 동질성과 유대감을 느끼며 값 비싼 와인을 들이키겠다. 그 와인 애호가 회장과 와인과의 관계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아들도 아버지의 와인 정신(?)을 잘 이어 받았던 걸까?

 

 

부케와 아로마, 오랜 것과 새 것

 

비록 비싼 와인이기는 하지만 손녀(‘립스틱’이 대표작인, 젊은 나이에 자살한 영화배우 마고 헤밍웨이)의 이름을 와인 이름을 따서 지은 헤밍웨이의 와인 사랑이ㅡ와인의 Queen이라는 사토 마고(Chateau Margaux)ㅡ 그 회장 회사의 파랑 로고에 오버랩되면서 검붉어 진다. 같은 와인이라도 마시는 사람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아무리 값비싼 와인을 마신다고 해도 원죄를 씻을 수는 없다. 비록 예배당에도 포도주가 존재할지라도---. 또한 값싼 와인을 마신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값싼 것은 아니다. 그 게 와인의 참 맛이다.

 

 

 

내리 쬐는 따사로운 햇살에 아직은 더위를 느낀다. 문득 보졸레 누보의 루비색 옅은 빛깔에 잔뜩 물들고, 빠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오래되고 좋은 와인이 갖는 부케는 비록 갖고 있지는 않아도 햇포도가 갖는 신선함과 상쾌함. 싱싱하고 상큼한 아로마를 마음껏 누리고 싶어진다. 영(young)하고 신선한 누보를 마시고 싶다. 햇포도처럼, 햇와인처럼 이 사회에도 신선함이 가득할 날을 생각하며---. 다가오는 ‘보졸레 누보 데이’엔 두어 병쯤 따야 할가 보다, 맛난 참치회 곁들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