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당사자연구』
변화를 꿈꾸는 50+세대, 연구자가 되다
이은정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개발실 PM)
실천적 연구의 철학
사회운동가이자 교육사상가였던 프레이리(Paulo Freire)는 연구는 기본적으로 실천적이고 참여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고 보았다. 연구란 기본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연구문제는 삶의 현장에서부터 발굴되어야 하며, 연구과정에는 현장의 목소리가 담겨야 하고, 연구결과는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식을 생산해내고 세상의 실질적 개선과 변화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기존의 연구자들이 현장에 관심을 가지는 실천적인 지식인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였다. 그 핵심에는 ‘연구=실천, 실천=연구’이며, ‘연구자=실천가, 실천가=연구자’라는 철학이 있다.
실천적 연구를 강조하는 논의에서,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연구자의 범주가 확장되었다는데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지식을 생산해내는 것은 전문 연구자의 몫이고, 현장에서는 전문 연구자가 생산한 지식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역할을 한다는 이분법적 관점이 만연해있었다. 그러나 실천적 연구에서는 실천가와 연구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지양하면서, 현장 사람들이 연구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는 것을 중시한다. 연구는 직업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현장에 있는 사람, 즉 당사자가 문제해결의 가장 핵심에 있기 때문에 당사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연구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연구자가 될 것을 강조한다.
얼핏, 일반 사람들과 연구는 멀게 느낄 수도 있지만, 삶과 연구는 사실 분리된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삶 속에서 어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 삶과 외부 세계에 대해 성찰을 해나가는, 즉 연구자적 관점을 가졌을 때 문제 해결을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구이고,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정립해가게 되고,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잡아가게 된다. 개인 차원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시민연구력, 즉 시민들이 학습하고 성찰하고 분석하는 힘은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중요하게 작동했다는 점은 많은 역사적 장면에서 드러난다(정민승, 2017).
이러한 문제의식들은 비판적 성인학습의 맥락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어 왔으며(이희수 외, 2010; 한숭희, 2000), 현장연구(field research, practitionery research), 실행연구/실천연구(action research), 참여연구(participatory research) 등의 세분화된 연구 모형으로 진화해왔다(조용환, 2015).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실천적 연구들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수행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왔고(Lewin, K., 1946), 국내에서도 교육 영역, 사회복지 영역 등의 다양한 사회현장에서 실천적 연구들이 시도되고 있다(김영천, 2001; 이혁규, 2009; 정민수 외, 2008).
50+당사자연구의 지향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2017년 50+당사자연구는 50+정책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궤를 같이 한다. 50+정책은 50+세대가 정책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긍정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주역으로서 역할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초점이 있다. 그래서 50+정책은 50세대를 누군가 마련한 정책의 혜택을 수동적으로 받는 정책의 객체이기보다는, 50+세대들 '스스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우리 사회를 위해 50+세대가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이 있는지를 고심하는 주체로서의 '당사자성'을 중시한다.
50+세대가 50+정책과 함께 하는 방식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50+캠퍼스의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할 수도 있고, 함께 모여서 고민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도 있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50+사업을 협력 추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일련의 경험들을 비판적이고 성찰적으로 분석해보면서 되새김질 하는 연구 활동을 할 수도 있다.
50+당사자연구는 그 가운데 50+세대들이 그동안 축적해온 소중한 경험과 지식들을 다시 한 번 성찰해보고, 그 성찰들을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민들과 연결 짓는 활동의 기회이다. 특히, 2017년 50+당사자연구는 실천적 연구의 철학을 기반으로 “성찰하고 탐색하는 연구자로서의 50+세대”, “연구자로서 사회변화에 기여하는 50+세대”,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50+세대”를 지향하는 프로젝트이다. 50+세대들이 50+사업과 정책 개발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장인 것이다.
50+당사자연구의 고민
2016년 당사자연구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외부적으로는 '과연 50+세대들이 연구 능력이 있는가? 연구의 질을 어떻게 검증하고 담보할 수 있는가? 당사자연구가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실천적 연구에 대한 이론적 논의들은 있었어도 공공영역에서 시민들의 실천연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드물었다는 점, 그리고 50+당사자연구가 시민들의 실천연구를 지원하는 초기단계의 굉장히 실험적인 프로젝트라는 점을 고려하면, 타당한 지적과 우려들이었다. 다행히, 50+당사자연구가 두해 째를 맞이하면서 시민연구력의 향상이 우리 사회변화에도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하는 논의들이 모이고 있고, 그러면서 당사자연구에 대해 우려했던 목소리들은 관심과 지지로 전환되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당사자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풀어나가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많다. 당사자연구가 의미 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한 기획들이 필요하다. 50+당사자연구의 구체적인 과정은 50+세대들이 스스로 연구책임자가 되어서 연구를 기획하고 진행하며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업과 정책을 제안하고 직접 실천으로 이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연구팀을 선정하여 연구비를 지원하고 연말에 연구보고서를 받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당사자연구의 결과로 연구보고서가 나오기까지 시민 스스로가 수없이 던질 질문과 성찰의 과정,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글로써 정리하는 과정 등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시민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토대를 보다 탄탄히 할 필요가 있고, 당사자연구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원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기획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50+세대들이 실천력과 연구력을 지닌 시민연구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지원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시민연구자로서의 활동을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더불어 당사자연구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많은 전문가들과 협력자들이 이 연구의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동참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이에 각 연구팀들의 연구를 지도할 자문 집단과 자문 집단의 컨설팅 내용을 보다 밀착해서 함께 고민해줄 연구지원단들이 어떻게 결합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또한 당사자연구의 결과적 산출물(연구보고서)뿐만 아니라 과정적 산출물(시민연구력의 향상, 시민연구자네트워크의 활성화, 사회적 실천활동으로의 연계 등)들을 어떻게 포착해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확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러한 숙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당사자연구 사업을 맡고 있는 담당자들의 몫일 것이다.
2017년 50+당사자연구의 추진 현황
1) 연구 공모
2017년에는 '50+세대가 스스로 연구하고 정책을 제안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4월 10일부터 5월 10일 한달동안 연구 공모를하였다. 50+당사자연구 공모사업의 이해를 돕기 위해 4월 17일에는 사전설명회를 개최하였으며, 이 자리에는 총 69명의 관심있는 시민들이 참여하였다. 먼저 재단에서 당사자연구 공모사업을 소개하였고, 이어서 지원자격 및 방법, 연구 심사의 기준 등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공모 결과, 최종적으로는 의미있는 연구주제로 총 32건의 연구가 접수되었다.
[2017년 50+당사자연구 공모사업 포스터]
2) 연구팀 선정
32개의 연구팀들이 지원한 가운데 1차 서류 심사와 2차 발표 및 면접 심사를 거쳐 어렵게 10개 팀을 선정하였다. 선정의 기준은 단순히 연구력이 뛰어난 것만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시민연구자들이 현실적이고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 변화의 주체로서 기여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이 중요한 기준이었다. 구체적으로는 '50+세대 자신의 경험과 사례, 고민과 성찰이 담겨있는 문제의식이 있는가? 실제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는가? 연구 성과가 50+정책 및 사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 연구수행 과정에서 현장과의 협력과 파트너십, 네트워크, 거버넌스 구축 등이 이루어지는가? 시민연구 활동의 생태계를 조성할 가능성이 있는가? 시민연구자네트워크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가?'등이 고려되었다. 이러한 선정기준에는 50+당사자연구 공모사업의 목적과 방향성이 함축되어있다.
3) 연구계획 보완
10개 팀이 선정된 이후에는 연구계획을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다. 좋은 연구결과물로 나올 수 있기 위해서는 연구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부터 문제의식을 보다 날카롭게 하고 연구수행을 위한 방법적 고민을 보다 구체적으로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연구팀들의 훌륭한 문제의식이 보다 좋은 연구결과물로 도출될 수 있도록 전문가집단의 컨설팅을 바탕으로 재단 담당자과 연구팀이 함께 논의하면서 연구계획서를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다.
연구계획의 보완과정까지 거친 10개 연구들은 세대간 협력형 공유주거, 진지한 여가, 조부모 공동양육 코디네이터, 생애진로설계 프로그램, 50+세대의 자기효능감, 젠더관점 은퇴교육 프로그램, 치매예방 생활습관화 프로그램, 커뮤니티 댄스, 마을교육자원과 마을교육과정, 50+시민의 사회공헌 활동 등의 소재로 신선하고 다양하다. 구체적인 제목들은 다음과 같다.
<2017년 50+당사자연구 연구제목> |
- 세대간 협력형 공유주거 활성화 방안 연구: 서울시 ‘한지붕 세대공감’ 사업을 중심으로 |
- 진지한 여가를 통한 50+ Role 모델에 관한 연구 |
- 조부모 공동양육 코디네이터 교육 프로그램 개발 연구 |
- 통합비전 생애진로설계 프로그램 효과 검증 프로젝트 |
- 50+세대의 생애목표와 투지의 관계분석을 통한 자기효능감 증진 |
- 서울시 50+세대 젠더관점 은퇴교육 프로그램 개발 연구 |
- 치매예방 생활습관화 실천 프로그램 개발 |
- 커뮤니티 댄스에 대한 50+세대의 인식 연구: 2016년 「중년 회복의 춤」프로그램 참여자를 대상으로 |
- 50+ 지역사회 연계 교육 대안으로서 마을교육생태계 자원 조사 및 지속가능한 마을교육과정 모델 개발: 성북구 시범 동을 중심으로 |
- 50+시민의 사회공헌 활동 모델 개발 및 확산을 위한 정책 연구: 장애요인 연구를 중심으로 |
4) 협약
보완된 연구계획서에 대한 확인을 토대로, 6월 16일에는 10개 팀들과 협약식 및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다. 이 날의 협약식은 형식적인 협약식이기보다는 50+세대 당사자가 주도하는 연구의 시작을 함께 축하하고, '서로의 연구내용과 예상되는 어려움을 나누며, 앞으로 서로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나누는 워크숍과 '당사자연구의 의미와 성공조건'을 논의하는 강연이 함께 진행되었다.
[2017년 50+당사자연구 협약식의 워크샵 장면]
이 자리에서 당사자연구팀들의 사회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열정과 의미있는 연구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고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서로 소통하고 의견을 모으면서 연구팀간 협력의 가능성과 서로의 자원을 어떻게 연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트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사자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재단, 전문가와 연구지원단들은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17년 50+당사자연구 협약식 참가자 단체 사진]
5) 연구 착수
협약을 맺으면서 2017년 50+당사자연구는 착수되었고, 연구팀들은 올해 10월 말까지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연구팀 워크샵, 자문위원 및 연구지원단과 함께 하는 지원프로그램, 중간평가, 최종평가 등에 참여하게 된다. 50+당사자연구는 이제 시작이며 앞으로도 여러 실험들을 해나갈 것이다. 시작하는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50+당사자연구는 연구의 과정과 결과 측면 모두에서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시민연구모델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재단은 보다 의미있는 연구가 될 수 있도록 당사자 편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연구를 함께 수행해나갈 것을 다짐해본다.
[참고문헌]
김영천(2001). 현장작업(fieldwork)에 필요한 열 한가지 연구기술. 교육인류학연구, 4(1), 1-43.
이혁규(2009). 교육현장 개선을 위한 실행연구 방법. 교육비평, 25, 196-213.
이희수, 정미영(2010). 성인학습에서 성찰과 비판적 성찰의 이론적 계보 분석. 한국교육, 37(4), 121-148.
정민수 외(2008). 지역사회 기반 참여연구 방법론. 보건교육・건강증진학회지, 25(1), 83-104.
정민승(2017). 당사자연구, 의미와 성공조건. 2017년 당사자연구 공모사업 협약식 및 오리엔테이션 강의자료(2017.6.16).
조용환(2015). 현장연구와 실행연구. 교육인류학연구, 18(4), 1-49.
한숭희(2000). 시민지식연대: 사회교육의 새로운 역할. 평생교육학연구, 6(2). 129-158.
Lewin, K. (1946). Action Research and Minority Problems. Journal of Social Issues, 2(4), 3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