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여행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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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는 시작부터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생활과 경제활동이 정지되고,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었던 암울한 시간이였습니다. 자본논리에 따른 환경파괴로 자연환경과 생태계는 이상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방만했던 인류의 생활태도에 대한 지구의 복수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조금씩 적응(체념?)해가고 있는 듯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지 모를 팬데믹과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의 삶과 여행, 이동 양식은 어떻게 될까요?
“2019년 여행이 인생의 마지막 해외여행이었구나”, “기내식이 그립다”, “해외로 나가야만 여행이냐”라는 문장에서부터 “일상여행”, “랜선여행”, “AI여행”, “구독여행”이라는 단어까지 코로나 시대가 만들어 낸 다양한 언어들입니다. 이렇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여행객들의 여행법과 여행사의 역할은 변화 중입니다. 앞으로 계속 반복될지 모를 팬데믹과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의 여행법과 여행취향의 변화는 어떻게 될까요? 여행객들(수요자)의 변화된 행태와 니즈가 여행사(공급자)에 생각해보게 하고, 요구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 비즈니스 여행
출퇴근 시간인데도 길에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코로나19의 경과에 따라 미래의 사무공간이 완전히 '오피스 프리'로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재택근무는 근로 공간과 시간의 자유도가 확대되면서 사무실과 집, 일과 여가의 관계맺기에 대한 변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로컬 크리에이터, 디지털 노마드 중심으로 사무+숙박+여행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다지역 노마드 근무” 형태는 IT인프라와 여러 협업툴의 진화에 의해 충분히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규제 때문에 아직 도입되지 못하고 있으나 일본은 집을 구독하는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고객(여행객)은 월 정액제로 원하는 지역에서 다양한 주거형태를 경쟁력있는 가격에 이용할 수 있으며, 지역은 사회적 문제인 빈집과 고용창출, 인구유입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해결할 수 있어 윈윈입니다. 일본과 같이 상업적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지자체에서도 지역 외 사람들(주로 청년들)에게 로컬 콘텐츠 개발을 명분으로 한 달 살기, 보름 살기, ㅇㅇ 살기 등의 공익 측면의 정책을 시행 중이고, 이용 사례는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 사회정의 책임여행
여행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생각이나 시각의 이동입니다. 친환경, 화석연료, 공동체, 생업설계, 봉사, 공정 등 다양한 시각을 가진 여행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상식적인 여행경비를 지불하며, 현지인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고, 현지 문화와 자연환경을 존중하며, 현지인이 가는 맛집과 장소를 구석구석 경험하며, 여행 조력자들까지 함께 행복해지는 공정여행에 대한 니즈는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 이후 국가 간 여행이 멈춰지면서, 세계 곳곳의 자연 생태계가 정화되면서 지구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젠 여행자의 시각과 여행사의 역할도 차츰 진화해야 합니다. 이제는 유명관광지 도장깨기식 저가 패키지 여행보다는 사회정의 측면의 책임여행 비중이 점차 증가할 것입니다. 초고가의 럭셔리 여행보다는 유기농식사와 친환경,필환경 책임여행이 이 시대의 건전하고 진정한 플렉스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필리핀 다바오 펄팜리조트의 환경보호선언문
■ 민낯여행, 빈집여행, 취향여행
몇 년 전 중년들의 여행은 지인들과 관광+유흥이 거의 전부였지만, 요즘은 SNS를 통해서 기호와 취향, 가치를 공유하면서 서로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테마여행을 다니며 정서적 만족을 추구하는 여행이 많아졌습니다. 개인의 활동범위가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시간은 끊임없이 현재를 더 빨리 과거로 만들어버리고, 기억은 금방 잊혀집니다. 하지만, 취향과 라이프스타일과 결합한 경험과 사건, 사물과 사람에 대한 깊은 기억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지하공간에서 듣던 7080 음악이나 여행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여행은 어느 지역으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가느냐에 따라 여행지에 대한 기억과 의미가 달라집니다. 봉사 중심의 볼론투어, 감추고 싶었던 주제의 민낯여행, 어두운 역사교육 다크 투어, 빈집여행, 남의집 여행, 개념여행, 사회적가치여행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 일상여행
업무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디지털 디바이스가 현격히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여가시간은 더욱 부족해졌습니다. 필자를 포함해서 코로나 사태 이후, 일거리는 없는데 이전보다 더 바쁘다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에 각 잡고 먼 여행을 떠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으로 골목골목과 가게를 방문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배움을 추구하는 일상여행자가 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해석하고, 일상을 여행처럼 누리거나 즐기는 성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2~3시간 한강 피크닉, 반나절 도심도보투어 패키지, 타임제 대실 호캉스도 일상여행자들에게는 큰 여행입니다. 이들에게는 여행이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일상의 공간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발견해내는 여행상품을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인증샷 여행
2030에게는 여행의 목적이 인스타그램인 경우가 많습니다. 북유럽식 피크닉 용품 대여 사업, 갬성차박 패키지(차량+캠핑용품+서핑용품) 대여 사업, 인스타글램핑 사업도 인증샷을 위한 여행입니다. 호텔깨기 인증샷, 긴 맛집 대기줄과 음식 인증샷(음식을 먹지도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등 이미지 여행이 인기입니다. 이런 형태의 여행객에게는 ㅇㅇ산에 오르며 보이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풍경사진이 아닌 정상도착 인증샷만 필요합니다. 남에게 보여줄 만한 인증샷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과시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최근 몇몇 뉴스를 통해서도 사람들이 반드시 이성적 혹은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래서 저희 회사의 유능한 마케터들도.. 어린왕자의 생택쥐베리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고 했나 봅니다.
■ 사람이 컨텐츠가 되는 여행
여행사를 통해서 가게 되는 대부분의 여행은 1~2년 내로 디지털로 바뀌게 될 것 같습니다. 고객(여행자)이 바리스타 로봇이나 AR/VR/AI 디바이스가 아닌 사람(호스트)에게 기대하는 서비스는 무엇일까요? 아마 호스트의 취향, 관심사를 통해 그 호스트만의 이야기가 있는 지역과 공간을 여행하는 서비스일 듯합니다. 따라서 고객들의 호스트 취향과 역량에 대한 관심은 더 강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여행사 직원(or 호스트)이 콘텐츠가 되는 여행입니다. 따라서 여행사 직원들의 여행경험과 여행상품판매의 연관성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단순한 리플릿과 문자 정보로 고객을 유인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여행사 직원들이 해당 지역의 경험과 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하고 공부해야 더욱 설득력 있고 경쟁력 있는 여행상품을 구성·판매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업종 진출
이것은 직접적인 여행은 아니지만, 여행사의 진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얼마 전 『한국여행업협동조합(트래블쿱)』은 소상공인 여행사를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위촉하고 소상공인을 위한 공유오피스 사업(트래블코업)을 시작했습니다. 소상공인의 사무실 임대료 절감과 협업 지원과 공유경제 실천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코로나로 답답한 여행업 종사자를 위한 좋은 시도이기도 합니다. 공정여행 가치를 실행하고 있었던 사회적기업 『세상에없는여행』도 친환경 공정무역 상품 개발 및 공정무역 온라인샵 오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여행용품 및 굿즈, 공정무역 상품 등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그 수많은 시간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도 휩쓸려 가지 않고 의연하게 버티고 살아남아, 거드름 피우지 않고 묵묵히 자기 업을 해나가면서 진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2019년까지는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약없이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었지만, 이젠 백신이 나오더라도 까다로운 준비절차와 긴 대기시간, 비용 인상으로 한 번의 해외여행이 매우 소중해질 것 같습니다. 해외여행도 많이 감소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달고나 커피가 유행한 것처럼 이제는 여행상품도 '필요나 수단'이 아닌 '동기나 목적'에 의한 소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만 가능한 경험과 체험” 도 동기나 목적 형태의 여행상품입니다
여타 업종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여행업종 대표님들과 직원들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생존과 존속을 고민해야 합니다. 여행사는 흔한 여행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의미와 경험을 만들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이들과의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조금은 익숙하지 않는 길 위에서 지나친 불안감, 어리석음, 휩쓸림에 매몰되지 말고, 이성적 사고로 본인에게 맞는 일을 찾아서 실행해야 합니다. 결국 바이러스는 사라질 것이고 하늘길은 열릴 것이니 그때까지 모두 존버하고 파이팅해야합니다. 여행업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글이 그닥 도움되지 않겠지만, 여행객들의 변화된 형태와 니즈를 잠시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는 잠깐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일단, 사무실 창틀에 먼지 좀 닦아야겠습니다. 사무실도 글쓰기도 난 키우는 거랑 똑같아 보입니다. 아끼고 다듬어야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